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돈>은 단순한 주식 범죄물이 아니라 ‘욕망의 구조’를 해부하는 불편한 거울일까?

by mino3159 2025. 11. 17.

영화 돈 포스터
영화 돈 포스터

넷플릭스에서 다시 회자되는 한국 영화 <돈>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주식 범죄물처럼 보입니다. 신입 주식 브로커가 거대한 판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서 돈의 달콤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체험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영화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면, 이 작품이 단순히 “돈 때문에 망한 한 청년의 몰락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증권사, 숫자로만 가득한 모니터 화면, 이름 없이 불리는 ‘티켓’ 같은 인물은 모두 개별적인 장치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소비하고, 어떻게 욕망을 길들이는지 보여주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이 글에서는 줄거리 중심의 리뷰가 아니라, <돈>이 숨겨놓은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공간과 소품’에 숨어 있는 자본의 룰.

-두 번째는 주인공 일현의 심리 변화에 드러나는 ‘욕망의 단계’.

-마지막으로는 이 영화가 한국 자본주의 영화사 안에서 갖는 위치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쉽게 클릭해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가 사실은 우리가 사는 시대를 꽤 집요하게 비추고 있다는 점을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서론 – 왜 지금, 넷플릭스에서 다시 <돈>을 봐야 할까?

처음 <돈>을 봤을 때는 “역시 돈의 맛에 빠진 청년이 한 번 크게 얻어맞는 이야기겠지”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주식, 작전, 비밀스러운 브로커, 내부 정보와 같은 키워드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소비된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다시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제 시선은 줄거리보다는 화면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디테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습니다. 같은 장면인데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이상하리만큼 다르게 보이는 영화들이 있죠. <돈>이 딱 그런 타입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모습보다도 “돈이라는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밀어붙이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습니다. 주인공 일현은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고, 거대한 사기판을 설계하는 천재도 아닙니다. 그저 “나도 한 번 잘 살아보고 싶다”라는, 너무나 익숙한 문장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런데 이 소박한 욕망이, 숫자 몇 개와 전화 몇 통을 지나며 어느 순간 ‘멈출 수 없는 가속도’로 변합니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그의 선택을 비판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나라도 저런 기회가 오면 흔들리지 않을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줄거리의 전개 순서대로 따라가는 대신 <돈>이 던지는 숨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구성해 보려 합니다. 왜 이 영화는 유독 ‘유리’와 ‘스크린’ 같은 차가운 물성을 반복해서 보여줄까요? 왜 일현의 표정은 돈을 벌면 벌수록 밝아지기보다는 점점 더 굳어질까요? 그리고 왜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성공 후 회개’ 서사로 마무리되는 대신 묵직한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을까요?

본론 – <돈>이 숨겨둔 세 가지 얼굴: 공간, 심리, 그리고 시대

1. 유리벽과 모니터 – 숫자가 사람을 지배하는 공간의 설계
<돈>의 첫 인상은 ‘시끄러운 숫자의 세계’입니다. 모니터에는 초 단위로 변하는 주가가 흐르고, 브로커들은 전화기와 키보드를 두드리며 폭격처럼 대사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장면들을 자세히 보면 영화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유리’입니다.

증권사 내부는 유리벽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안과 밖이 모두 보이지만 쉽게 섞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조직의 권력 구조를 상징합니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곳,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계층 구조를 유리라는 물성으로 시각화한 것이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주식 브로커들이 사람보다 화면을 먼저 본다는 점입니다. 기쁨과 실패, 공포와 희열이 모두 숫자의 그래프와 함께 전달됩니다.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공간, 숫자만이 가치가 되는 공간. 이곳에서 일현은 조금씩 ‘돈이 사람 위에 있는 세계’에 적응해 갑니다.


2. 일현의 눈빛 – 욕망이 단계별로 변하는 과정
일현의 첫 욕망은 단순합니다. “돈 벌고 싶다.” 빚을 갚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죠. 그런데 더 큰 돈을 맛보는 순간, 그의 욕망은 ‘합리적인 욕구’에서 ‘멈출 수 없는 충동’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와 자기 합리화 과정입니다. 처음엔 한 번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빠지면 더 위험한 거 아닌가”라는 논리로 자신을 설득합니다. 영화는 이 흔들리는 내면을 과장하지 않고 얼굴의 미세한 변화, 짧은 침묵, 손의 떨림으로 조용히 잡아냅니다.

일현이 진짜 무너지는 시점은 큰 돈을 잃을 때가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때 관객은 깨닫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외부의 처벌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버렸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돈>은 욕망의 층위를 아주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돈 때문에 망했다’가 아니라, 욕망이 어떻게 인간의 기준을 조금씩 흐리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3. 한국 자본주의 영화사에서 <돈>이 차지하는 자리
<부당거래>, <내부자들>, <베테랑> 등 한국 영화계에는 자본과 권력을 고발하는 대형 스케일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돈>은 훨씬 더 일상적인 차원의 자본주의를 다룹니다. 거대 권력의 비리가 아니라, 누구나 매일 접하는 주식 시장, 단타, 온라인 정보, 수익률 경쟁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영화로 끌어옵니다.

덕분에 <돈>은 “저건 영화 속 이야기야”가 아니라 “저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붙어 있다”라는 감각을 제공합니다. 더 현실적이고 더 불편합니다. 관객은 일현을 비난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도 비슷한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합니다.

감독은 거대한 음모를 폭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이 쌓여 큰 균열을 만드는 과정을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자본주의 영화사에서 ‘현실에 가장 가까운 자본 이야기’라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결론 <돈>은 결국, 우리 각자의 가격을 묻는 영화다

첫 관람과 재관람의 감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역시 과한 욕심은 벌 받는구나”라는 뻔한 교훈이 떠올랐다면, 지금은 “나는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돈>은 주식판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유혹·불안·자기 합리화의 구조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심리극이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돈>을 다시 보는 일은 단순한 콘텐츠 소비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과 욕망의 방향을 점검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격’을 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나요?”

그래서 <돈>은 단순한 주식 범죄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욕망을 해부하는 날카로운 에세이 같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