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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은 ‘전쟁’도 ‘반란’도 아닌, 그 사이에 갇힌 인간들의 이야기일까?

by mino3159 2025. 11. 19.

전,란 포스터
영화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전, 란>은 표면적으로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격변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칼과 화살이 아니라, 그 칼을 든 이들과 맞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와 ‘우정’, 그리고 ‘배반’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천영과 박정민이 연기한 종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동무였지만, 신분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서로를 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관점으로 이 영화를 새롭게 읽어보려 한다. 첫 번째는 공간과 제도가 감정과 운명이 되어버린 배경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영과 종려라는 인물이 겪는 심리적 변화의 궤적이다. 세 번째는 이 영화가 한국 사극과 넷플릭스 플랫폼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이다. 단순한 전쟁극이 아니라, 내 안에 놓인 균열을 들여다보는 초상이라는 점을 함께 탐색해보자.

서론 – 왜란이 끝나고 남은 것은 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숱한 시선이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익숙한 사극의 틀을 벗어납니다. 전쟁이 곧 전면에 등장하기보다는, 전쟁 전후의 ‘상태’가 더욱 강조됩니다. 천영은 양인에서 노비로 전락하며 신분제의 잔혹함을 삶의 몸으로 각인시켜야 했고, 종려는 무신 집안의 후계자로 자라나 책임과 권력의 무게를 점점 실감하게 됩니다. 이 둘이 어린 시절 나누었던 검술 연습과 웃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동무애는, 전쟁과 반란이 휩쓸고 간 뒤 폐허가 된 나라 속에서 무력감과 적대감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정의 변화가 대사로 강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면은 풍부한 액션이나 거대한 전투보다 그들이 서 있는 풍경의 변화, 흐려진 창문 뒤 풍경, 연기가 자욱한 골목 등을 통해 감정의 틈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틈을 통해 묻습니다. ‘나는 누구였고, 누구였어야 했던가?’라고. 이 영화는 그래서 단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사건 사이에 남은 사람들의 시선과 상처를 새기는 작업입니다.

이제 본론에서는 공간이 어떻게 감정을 구축했는지, 인물의 심리는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의 흐름 속에 서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 <전, 란>이 남긴 세 가지 잔향: 제도, 욕망, 재해석

1.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단단한 제도 – 신분제와 권력의 공간 설계
영화 속 배경은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파도 한가운데지만, 사실 그 핵심은 ‘신분제’라는 오래된 벽입니다. 천영으로 대표되는 양인·노비 계급과, 종려로 대표되는 무신 가문은 단순히 둘의 대립이 아니라 제도가 인물의 운명을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어린 시절 함께 검술을 익히던 두 사람은 제도가 던진 분리선 앞에서 각자의 자리를 강요받습니다.

이 공간 감각은 단지 배경미술이 아니라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불타는 경복궁, 폐허가 된 성벽, 나무 난간 너머로 보이는 흐린 하늘은 모두 ‘질서가 무너진 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액션의 흐름 속에서도 신분제가 깔린 균열은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으며, 천영이 검을 들고 싸우는 순간에도 그의 몸에는 “노비였던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2. 우정과 증오 사이 – 천영과 종려의 심리적 궤적
천영과 종려는 처음에는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였습니다. 검을 겨뤘던 연습생 시절부터, 서로에게 “너의 칼엔 분노가 없어”라고 말했던 그 순간까지.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누가 누구를 해방시켜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 우정은 균열을 맞이합니다. 종려는 거대한 책임과 권력을 떠안고, 천영은 그 책임과 권력 앞에 ‘노비였던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관계는 전형적인 ‘접속-해체-재접속’의 흐름을 거칩니다. 처음엔 공통의 경험으로 연결되지만, 분리되는 순간에는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마음이 오히려 가장 큰 장애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장애물은 복수가 아닌 ‘오해’가 됩니다. 천영을 향한 종려의 분노는 단순한 배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기록입니다. 반대로 천영의 싸움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기억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저항입니다.


3. 사극의 재해석 – 넷플릭스 팬덤 속 한국 사극의 새로운 시선
이 영화는 한국 사극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문법이 반영됩니다. 즉, 글로벌 시청자를 고려한 비주얼 언어, ‘거대 권력 vs 민중’이라는 친숙한 구조를 넘어 ‘내 맘속의 권력’이라는 보다 내밀한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박찬욱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이 맥락에서 의미심장합니다. :contentReference[oaicite:4]{index=4}

특히 이 영화가 한국 자본주의와 신분제 체제의 맥락을 동시에 다루는 방식은 과거의 사극들과 차별점이 됩니다. 거대 헤게모니의 승리보다,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의 얼굴을 나란히 보여주고, 한편으론 그 사이에 섞여버린 무수한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실제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장르적 실험을 감행한 셈입니다.

결론 – <전, 란>은 결국, ‘전쟁’과 ‘반란’ 사이에 멈춘 우리의 초상이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폭발음도 대군의 행군도 아닙니다. 남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머물렀던 자리, 그리고 우리가 머물렀어야 했던 자리입니다. 천영과 종려의 검은 결국 서로를 베는 칼날처럼 보였지만, 그 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둘러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느낍니다. 누군가를 해방시키는 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해방당한 칼이라는 역설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쟁을 외적인 폭력과 연관 지었지만,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내부의 싸움 — 신분제, 우정의 파괴, 기억의 흐름 — 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전, 란>은 그래서 단지 한 시대의 비극이 아니라, 나를 만든 제도와 나의 선택을 마주하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검을 들었고, 누구를 향해 칼을 겨눴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답을 할 준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출처-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